서론
당뇨 진단을 받으면 식습관에 대한 걱정이 가장 먼저 찾아옵니다.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할지, 먹어도 괜찮은 간식은 무엇인지, 혹시 내가 좋아하던 음식이 모두 금지되진 않을지 등 다양한 의문과 불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때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에 의존하다 보면, 잘못된 상식을 그대로 믿고 실천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병원 현장에서 영양 상담을 하다 보면, 당뇨 식사요법에 대한 오해가 생각보다 깊고 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건 당뇨에 좋다던데요?', '간식은 아예 끊어야죠?', '무가당이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같은 질문을 하루에도 수차례 듣습니다.
이 글에서는 임상영양사로서 실제 상담에서 자주 마주했던 당뇨 관련 오해 5가지를 선정하여, 사례와 함께 팩트 체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당뇨 식단은 단순히 '적게 먹는 것'이 아닌, 정확한 지식과 꾸준한 실천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그 오해들을 하나씩 바로잡아보겠습니다.
📌 요약정리
- 현미밥은 무조건 혈당에 좋지 않습니다. 섬유소 함량이 핵심입니다.
- 고구마는 조리 방법과 양에 따라 혈당 영향을 다르게 미칩니다.
- 무가당 제품도 곡물 당분이 혈당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건강보조식품은 성분표 확인 없이 섭취하면 혈당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 식사량 조절은 균형 있게 구성해야 하며, 무조건 줄이는 방식은 위험합니다.
✔️ 당뇨 식사조절은 개인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내 몸에 맞는 정보를 기준으로, 균형 있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당뇨 간식은 무조건 끊어야 한다
"당뇨 진단받았으니 간식은 이제 끝이네요." 외래 상담 중 자주 듣는 말입니다. 간식을 무조건 끊어야 한다는 오해는 매우 흔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한 60대 여성 환자분은 공복 혈당이 160~170mg/dL 수준으로 꾸준히 높게 나오는 상태였고, 새벽에 어지럼증이 발생해 응급실을 찾으셨습니다. 식사 일기를 확인해 보니 아침 식사는 6시, 점심은 오후 1시, 저녁은 7시로 식사 간격이 지나치게 긴 데다, 그 사이에 아무것도 드시지 않는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특히 아침과 점심 사이의 공복 시간이 7시간에 달해, 중간 혈당이 불안정한 상태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중간 간식으로 삶은 달걀, 저당 요거트, 견과류 등을 소량 섭취하도록 안내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간식 먹어도 되나요?'라며 걱정하셨지만, 식사 간격이 너무 길 경우 저혈당이나 폭식으로 인해 오히려 혈당이 급등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드리자 바로 이해하셨습니다. 이후 식단을 조정한 2주 뒤, 공복 혈당은 130mg/dL로 안정되었고, 새벽 어지럼증도 사라졌습니다.
병원에서 제공하는 당뇨치료식에도 간식이 포함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혈당 안정'을 위한 전략입니다. 간식은 당뇨 식단에서 금기 사항이 아닙니다. 어떤 음식을, 어떤 양으로, 어떤 시간에 먹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당뇨 간식을 무조건 끊기보다는, 간식을 '전략적인 혈당 관리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접근법입니다.
2. 당뇨에 고구마는 무조건 좋은 식품이다
"고구마는 당뇨에 좋다니까 밥 대신 먹고 있어요." 이 말도 상담에서 아주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고구마가 무조건 좋은 식품은 아닙니다. 고구마도 엄연히 탄수화물이며, 종류와 조리법에 따라 혈당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다릅니다.
실제 50대 남성 환자분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구운 호박고구마 두 개와 삶은 달걀을 드셨는데, 공복 혈당이 180mg/dL까지 오르며 조절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상담 중 식사일기를 자세히 분석해 보니, 고구마 한 개가 150g이 넘는 크기였고 조리 방식도 혈당을 빠르게 올릴 수 있는 '굽기'였습니다. 특히 호박고구마는 단맛이 강한 품종으로, 구울 경우 수분이 빠지고 당분이 농축되어 혈당지수(GI)가 80~90까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설명드리고, 고구마 섭취 시 '삶은 밤고구마 100g 이내'로 조절하도록 가이드를 제공했습니다. 4주 뒤 공복 혈당은 150mg/dL로 개선되었고, 환자분은 '같은 식품인데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라고 놀라워하셨습니다.
고구마는 적절히 활용하면 유익한 식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뇨 환자에게는 '양과 조리법'이 핵심입니다. 당지수와 혈당 부하(GL)를 함께 고려해 섭취해야 식단 전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건강하다는 인식은 오히려 혈당 조절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3. 당뇨에 무가당 제품은 혈당에 영향 없다
"무가당이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이 질문은 정말 자주 듣습니다. 무가당이라는 표현만 보고 안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혈당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 40대 여성 환자분은 단백질 보충을 위해 매일 아침 '무가당 곡물두유'를 한 팩씩 섭취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량도 적당했고, 과일도 줄였다고 하셨지만 공복 혈당이 170mg/dL 이상으로 유지돼 원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식사일기를 확인하고 제품 성분표를 함께 분석해보니, 해당 두유에는 당류가 12g, 총탄수화물이 20g 이상 들어 있었습니다. '설탕은 안 들었지만 곡물의 전분이 그대로 들어 있어 혈당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설명드렸습니다. 환자분은 '무가당이라는 말만 믿고 아예 성분표는 안 봤다'라고 하시며 놀라워하셨습니다. 이후 식단을 조정하고 두유를 끊었습니다. 추가로 식후에 운동을 좀 더 했더니 공복 혈당이 쉽게 일주일 만에 140mg/dL대로 안정되었습니다.
무가당이라는 단어는 '첨가당이 없다'는 뜻일 뿐, 당류나 탄수화물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특히 곡물이나 과일을 원료로 한 음료나 시리얼, 간식 등은 가공 과정에서 혈당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성분이 많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당뇨 환자에게는 포장 앞면의 마케팅 문구보다, 뒷면의 영양성분표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4. 당뇨 건강식품은 혈당 조절에 무조건 도움이 된다
"홍삼이 면역력에 좋다 해서 아침마다 챙겨 먹고 있어요." 이런 말은 특히 중장년층 당뇨 환자에게서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건강을 위해 챙긴 보조제가 오히려 혈당 조절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 60대 남성 환자분은 혈당 조절이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식전 혈당이 160mg/dL 이상으로 상승하여 내원하셨습니다. 식사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한 가지 변화는 '아침마다 홍삼 스틱을 복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홍삼 제품이 '농축액' 형태였다는 점입니다. 홍삼의 유효성분을 추출하고 맛과 점도를 위해 꿀이나 물엿이 첨가된 제품이었고, 확인해보니 1포당 당류가 7~8g 수준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공복에 섭취하던 이 건강식품이 혈당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상담 후 제품을 중단하고 2주 후 다시 측정한 공복 혈당은 130mg/dL로 회복되었습니다.
특히 즙 형태의 건강식품은 섬유소가 거의 제거되어 있어 당의 흡수가 빨라지고, 원재료의 양도 많아져 당 섭취량이 생각보다 커집니다. 당뇨 환자에게 '건강식품'은 반드시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고, 의료진과 상의 후 섭취를 결정해야 합니다. 단순히 좋다는 말만 믿고 복용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5. 당뇨 식사는 무조건 줄여야 혈당이 떨어진다
당뇨를 진단받은 직후, 식사량을 급격히 줄이려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밥을 아예 안 먹고 사과만 먹어요.' '요즘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이런 극단적인 조절 방식은 오히려 혈당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50대 여성 환자 한 분은 식후 혈당이 높다는 이유로 식사량을 과도하게 줄였습니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두유와 사과, 저녁은 샐러드로 구성된 식사를 반복하셨고, 체중은 3kg 가까이 빠졌지만 공복 혈당은 190mg/dL로 더 높아졌습니다. 특히 오후에는 어지러움, 손 떨림 같은 저혈당 증상도 호소하셨습니다.
상담을 통해 이 환자분의 식사 구성을 재조정하였고, 하루 세 끼를 일정한 시간에 균형 있게 섭취하도록 안내했습니다. 특히 단백질과 식이섬유 섭취를 늘려 혈당 상승 속도를 늦추고 포만감을 유지하도록 구성하였습니다. 3주 후, 공복 혈당은 140mg/dL 수준으로 떨어졌고 저혈당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환자분은 '줄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균형이 더 중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라고 하셨습니다.
당뇨 식사는 '덜 먹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잘 먹는 것'이 핵심입니다.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하는 습관이야말로 혈당 조절의 첫걸음입니다.
당뇨 식사조절, 오해보다 정확한 정보가 먼저입니다
당뇨 관리는 단순히 식사를 줄이고 당분을 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구마는 좋은 식품이지만 섭취 방법에 따라 독이 될 수 있고, 무가당이라는 표현도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건강보조식품이나 식사량 조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좋다고 들은 이야기', '인터넷에서 본 정보'를 바탕으로 식단을 구성합니다. 하지만 그 정보가 본인의 혈당 상태와 맞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혈당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상태에 맞는 정보'를 바탕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당뇨 식사조절의 첫걸음은, 오해를 걷어내고 정확한 원칙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됩니다.